서기 3124년 탄생한 새로운 인류는 2000년대 초반에 살다 지나간 과거의 인간들에 대해 이렇게 서술할 지도 모른다.

"그 시기에 이르러 개개 인간의 지식과 경험의 전이 속도는 1kps(knowledge per second)에 이르렀다. 물론 지금은 1000kps가 일반적인 속도다. 2000년대 무렵이 되서야 지금은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몸 밖에 따로 존재하는 '외장형 컴퓨터'와 인터넷(이라 불리는) 네트워크망을 통해 그 당시 인간들은 자신의 경험 이외의 지식을 찾아내었고[각주:1] 그것을 '정보'라 표현하였다. 그 정보는 당시 인류에게 그 당시 스스로는 인식할 수 없었던 놀라운- 하지만 당시 인류의 대표적 특성인 "개인 생활의 급격한 변화"를 이룰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쉽게 말하자면 인간이 네트워크망에 존재하고 있는 '노하우가 축적된 공유된 지식'에 쉽게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이를습득한 당시 인간 삶의 변화 주기가 무척 짧아졌다는 것이다.

좀 더 이전의 시기와 비교해 보면 이 변혁의 시기의 특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000년대까지의 인간의 인생은 '정해진 대로'를 벗어날 수 없었다. 노예로 태어나면 노예로 자라야 했다. 서기 1200년대를 살고 갔던 잉카족이라고 불렸던 한 인류는 다음과 같은 극단적인 사례도 보여준다.

잉카 부족들은 결정론을 믿었고 세습적인 계급 제도를 받아들였다. 그들에게는 직업 지도의 문제가 없었다. 직업은 출생으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농부의 아들은 농부가 되고 무사의 아들은 무사가 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들은 세습하는 과정에서 혹시 생길지도 모를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아이들의 몸에 금방 알아볼 수 있는 표시를 새겼다. 그 방법은 이러했다. 정수리가 채 굳지 않아서 숫구멍이 발딱거리는 갓난아이의 머리를 나무로 만든 특별한 바이스에 물려 놓는다. 그 바이스는 아이들의 머리통을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예를들어, 왕의 자식들은 네모지게 무사의 아이들은 세모지게 하는 식이다. 머리통 모양을 주어진 틀에 맞추어 가는 그 공정은 그다지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버드렁니를 교정하기 위해 치아 보정기구를 달고 다니는 거나 크게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물렁물렁한 머리통은 나무틀 속에서 단단해진다. 그러고 나면, 설령 왕자가 벌거벗은 채 거리에 버려진다 해도 그게 왕자라는 것은 누구나 알아 볼 수 있다. 네모꼴의 왕관을 쓸 수 있는 네모진 머리를 가진 아이는 왕자뿐이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무사 자식들의 머리통은 세모꼴로 맞추어졌고, 농부 자식들의 머리 모양은 뾰족했다.
그렇듯, 저마다 사회적 계급과 직능을 머리통에 찍고 평생을 살아가야 했기 때문에 잉카사회에는 변동이 일어나지 않았고, 개인적인 야망이 피어날 여지가 없었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 [쥐의 똥구멍을 꿰맨 여공] 중


극단적이지만 인류가 나타난 이후 2000년까지는 위와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2000년대 인간들과 우리의 차이는 우리가 3일 가량 걸리는 변화에 비해 이들은 1년 가량 시간이 걸렸다는 차이가 있다. 물론 당시 대다수의 인간들은 '변화'를 불쾌해 하거나 귀찮아 해서 주어진 환경에 머무르려 했지만 몇몇 인간들은 당시의 시대 정신인 [발전]과 [변화]에 코드를 맞춰 우리로 봐서는 제법인 [인생즐기기 코스]에 들어가 있었던 것 같다. 삶의 상대성을 인식한 이들은 인생을 '도전'이라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하략...."

지식과 정보에 의한 변화와 발전의 시대.
발전과 변화의 우월성에 대한 회의가 또한 함께 공존하는 시대.

나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1. 지금처럼 개인간의 지식과 정보가 동기화(syncronized)된지는 불과 500년이 되지 않았다! [본문으로]

치과와 그 참을 수 없는 게으름

잡설 2008/11/26 13:48 by onemanbo

치과 의자에 누워 입을 벌리고 앉았노라면, 스스로의 게으름에 대해서 잠시 참을 수 없게 되는 순간이 꼭 온다.
어휴.. 그 이 닦는 게 뭐라고.. 그거 못해서 여기에 이렇게 누웠누.
게다가 치과에 가야하는 줄 알면서 이런저런 핑계로 충치를 키워놔 더 큰 치료를 받아야 하는 때면 나의 참을 수 없는 게으름에 대한 자괴감이 물씬 밀려온다.

"잇몸을 잘라내서 안에 뼈를 조금 깎고 씌워야 돼요."하는 의사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무슨 집짓는 이야기 하는 줄 알았다. 땅파고 공구리치고 콩크리트 부워 넣겠다고? ㅋㅋ

아 이런 게을러 빠진 인생이로고. 게으름이 입안에서 건축물을 짓게 하는 구나.

.....

치료를 받으면서 이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묘안이 떠올랐다.
1. 남자 환자인 경우 반드시 아리따운 여의사로 배정할 것
2, 치료 자세를 좀 더 야릇하게 할 것
3. 복장까지 조금 더 오픈하면...

이 고통이 좀 경감되지 않을까.

고통의 강도에 비해서는 순수한 이 게으른 수컷의 생각.
오늘자 디지털 뉴스를 보니 "KT, 최악의 3분기 실적 위기감 팽배"라는 기사가 있다.
KT라는 투쟁심 없는 공룡이 경기 침체기와 기술 패러다임 전환기에 잠시 끙끙거리는 모습이라고 보이기도 하지만 인적 쇄신 없는 민영화가 내놓은 결과는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많은 경험은 아니지만 KT와 관계된 사람들(메가패스 관련 사람들 말고;;;)과 만나거나 일을 해 보면 사람들이 아직도 '공무원'같다는 느낌을 왕왕 받는다. 사람들 표정도 그렇지만 일처리하는 태도나 시간, 방식이 특히 그랬던 것 같다. 워낙 거대 조직이라 민영화 되었다고 몇십년된 조직 구성원이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일 것이다. 하지만 "실적 위기감 팽배"라는 저 기사를 읽어도 안에 철밥통 차고 앉은 수많은 KT과장 부장들이 눈 깜짝이나 할까 싶다. 대규모 해고 사태가 있으면 몰라도.(열심히 일하시는 KT과장 부장님께는 사과를 드려요;;)

최근 KBS2TV와 MBC 민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곧잘 나오고 있다.
정치 돌아가는 작금의 사태들을 보면 '친정부 방송을 만드려는 수작'이라는 정치적 평가에 일견 수긍되는 점도 있지만 방송국 PD 같이 꿈쩍도 않는 권력 집단의 부패(이들도 守舊!)나 정치적 편견들, 공기업 구성원들이 가지는 경제관념 없는 안이함과 비효율적인 시스템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에 민영화 자체에 대한 생각이 오락가락하다. 혹자는 이런 생각을 '방송의 공공성'이라는, 먹먹한 감정이 드는 커다란 말로 "빈대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생각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방송'과 '통신'에 붙어있는 [공공성]이라는 거대한 방패는 이제 좀 거둘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이젠 '방송'이나 '통신'이 가지는 '공공성' 못지 않게 그 자체가 가지는 '상업성' 또한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즉 제대로된 상업 거대 방송회사가 나타나서 시장 규모를 키워야 한다.
근데 그게 왜 지금 타이밍이냐고, 그게 KBS나 MBC냐고 묻는다면...

ㅆㅂ 그래서 심사가 복잡하다고 하잖아!
그럼 언제 할겨? 다음 정권은 할 수 있을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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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선 매일 수양록 썼는데. 사회 나와선 블로그 써야겠다.
by oneman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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