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이 이 제목으로 책을 썼지 아마.
간밤에.. 웃기지만 '내가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 대해서 썰을 푸는 꿈을 꿨다.
참.. 꿈도.. 별 꿈을 다꾼다.
썰을 푸는 상대방 중 한 명에는 김영민 교수가 있었다. 최근에 '장미와 주판'홈페이지에 한 번 들렀던 것이 기억에 남아 있었던 듯.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거꾸로 말해서 기독교인이려면 다음 세가지를 사실(fact)라고 믿어야 한다.
1. 한 사람이 수정 없이 난자로만 태어났다.
2. 난자로 태어난 이 사람은 신의 아들이자- 삼위일체라고- 신이다.
3. 이 사람이 못에 박혀 피를 흘려 죽는데 4일 만에 다시 살아난다.
위의 세 가지는 오래되고 유명한 이야기라 신화처럼 여겨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진시황 보다 200여년이나 더 이후의 이야기이다. 달력으로 봐도 불과 2000년의 전 이야기인데도 진시황이 훨씬 사실적으로 들린다. 누군 죽기 싫어 한반도에까지 불로초를 찾으라고 사람을 보냈다고도 하는데.. 완전히 죽은 인간이 부활했다는 것을 믿으라니.. 물론 주몽이 알에서 깨어났다는 것과 비슷한 시기로 비슷하게 받아들이라고 하면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것을 사실로 믿는 것은 불가능하다. 요점은 이것을 '신화'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사실'로 받아들여야 진짜 믿는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는 부처님이 더 친근하다. '부활'보다는 '열반'이 가벼우니까.
또 기독교인이라면 따라야할 핵심 가르침 중에 다음 것이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가 뭔지라도 알고 하는 소린지 모르겠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복수가 불가능하거나, 원래 원수인데 원수로 안여겨서 넘어갈 수는 있겠지만 '사랑'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저걸 따르라는 말은 도저희 불가능하다.
좀 더 현실감을 가지고 생각해 봐라. 원수가 생겼는데,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백번 양보해 용서해 볼 수는 있어도 사랑할 수는 없다.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고.
영화 제목이 기억이 안나는데 박찬욱 감독의 한 영화중에 자신들의 가족을 난도질해 죽였던 '최민식'을 잡아 두고 이 놈을 어떻게 처분할지 회의하는 장면이 있다. 그 상황에서 원수를 사랑하자고 주장하고 용서하고 떠나는 사람이 기독교인이다. 물론 영화 속에서 최민식은 전원 동의 하에 스스로 해코지 했던 방식 대로 죽었다.
뭐 죽여놓고 하느님께 진심으로 '용서' 구하고 죄를 '사함' 받으면 된다고 말하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미] 기독교인이려면 [이미] 저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To be가 아니라 Being이다. 저건 예수님의 핵심 주문 사항인 '서로 사랑하라'의 변형태 아닌가? 즉, 기독교인이라면 이미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저걸 따라야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니.
맨정신으로 저 세가지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말을 따라야 하므로-
단순히 '착하게 살아라'라고만 했어도 따르기 쉬웠을텐데.
성서에 잠언을 읽으면 참 감동 깊고 머리가 맑아지고 그러긴 하지만,
그래서 난 [기독교인]이 아니다.
간밤에.. 웃기지만 '내가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 대해서 썰을 푸는 꿈을 꿨다.
참.. 꿈도.. 별 꿈을 다꾼다.
썰을 푸는 상대방 중 한 명에는 김영민 교수가 있었다. 최근에 '장미와 주판'홈페이지에 한 번 들렀던 것이 기억에 남아 있었던 듯.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거꾸로 말해서 기독교인이려면 다음 세가지를 사실(fact)라고 믿어야 한다.
1. 한 사람이 수정 없이 난자로만 태어났다.
2. 난자로 태어난 이 사람은 신의 아들이자- 삼위일체라고- 신이다.
3. 이 사람이 못에 박혀 피를 흘려 죽는데 4일 만에 다시 살아난다.
위의 세 가지는 오래되고 유명한 이야기라 신화처럼 여겨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진시황 보다 200여년이나 더 이후의 이야기이다. 달력으로 봐도 불과 2000년의 전 이야기인데도 진시황이 훨씬 사실적으로 들린다. 누군 죽기 싫어 한반도에까지 불로초를 찾으라고 사람을 보냈다고도 하는데.. 완전히 죽은 인간이 부활했다는 것을 믿으라니.. 물론 주몽이 알에서 깨어났다는 것과 비슷한 시기로 비슷하게 받아들이라고 하면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것을 사실로 믿는 것은 불가능하다. 요점은 이것을 '신화'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사실'로 받아들여야 진짜 믿는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는 부처님이 더 친근하다. '부활'보다는 '열반'이 가벼우니까.
또 기독교인이라면 따라야할 핵심 가르침 중에 다음 것이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
원수가 뭔지라도 알고 하는 소린지 모르겠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복수가 불가능하거나, 원래 원수인데 원수로 안여겨서 넘어갈 수는 있겠지만 '사랑'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저걸 따르라는 말은 도저희 불가능하다.
좀 더 현실감을 가지고 생각해 봐라. 원수가 생겼는데,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백번 양보해 용서해 볼 수는 있어도 사랑할 수는 없다.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고.
영화 제목이 기억이 안나는데 박찬욱 감독의 한 영화중에 자신들의 가족을 난도질해 죽였던 '최민식'을 잡아 두고 이 놈을 어떻게 처분할지 회의하는 장면이 있다. 그 상황에서 원수를 사랑하자고 주장하고 용서하고 떠나는 사람이 기독교인이다. 물론 영화 속에서 최민식은 전원 동의 하에 스스로 해코지 했던 방식 대로 죽었다.
뭐 죽여놓고 하느님께 진심으로 '용서' 구하고 죄를 '사함' 받으면 된다고 말하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미] 기독교인이려면 [이미] 저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To be가 아니라 Being이다. 저건 예수님의 핵심 주문 사항인 '서로 사랑하라'의 변형태 아닌가? 즉, 기독교인이라면 이미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저걸 따라야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니.
맨정신으로 저 세가지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말을 따라야 하므로-
단순히 '착하게 살아라'라고만 했어도 따르기 쉬웠을텐데.
성서에 잠언을 읽으면 참 감동 깊고 머리가 맑아지고 그러긴 하지만,
그래서 난 [기독교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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